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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713-8267 (Print)      |      ISSN 2713-8275 (Online)

 

61집 | 백하(白下) 윤순(尹淳)의 산수 공간 인식과 그 의미 (김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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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인문학연구소 작성일22-11-14 20:04 조회84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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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白下尹淳(1680∼1741)의 山水詩를 연구 대상으로 삼아 백하가 지니고 있던 산수 공간 인식과 그 의미를 밝히기 위해 기획된 것이다. 산수 공간으로 분류하여 논의를 진행한 것은 우선 백하의 시세계에서 가장 의미 있는 공간이 3곳으로 대별되며, 그 공간이 모두 산수와 연계되기 때문이다.

  이에 먼저 2장에서는 백하의 삶과 산수시를 개관하고 공간별로 산수시를 분류하였는데, 이는 백하의 산수시를 입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함이다. 이어서 3장에서는 백하의 산수 공간 인식 양상과 그 의미를 밝히는 작업을 진행하고자 하였다. 이에 첫 번째로는 백하가 1715년에 방문한 金剛山이라는 공간에 주목하고자 하였다. 조선시대의 금강산 유람은 당시 성행했던 유람 양상 중 하나인데, 특징적인 면모는 백하가 금강산을 신선 세계로 인식했다는 점이다. 여타 산수시에서는 이와 같은 양상이 확인되지 않으며 오직 금강산이라는 공간만을 ‘仙山’으로 표현했다는 점이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두 번째로는 同遊체험 공간으로서의 俗離山과 시적 형상화 양상을 확인해 보고자 하였다. 백하는 1716년에 속리산을 유람했으며 여러 편의 유산시를 남겼는데, 그중에서도 특징적인 양상은 백하가 유람한 속리산이 同遊체험 공간으로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다. 이에 여기에서는 백하의 작품을 중심으로 살피되, 동시기 백하와 同遊한 澹軒李夏坤(1677∼1724)의 작품을 함께 분석하였다. 내용적으로는 주요 사찰들이나 승려와의 기록이 주를 차지하며, 작품에 佛界에 대한 묘사가 되어있다는 특징을 확인하였다. 세 번째로는 관직 사직 후, 은둔 공간으로의 白鶴山을 조명해보고자 하였다. 백하는 1723년 탄핵을 받고 사직한 뒤 백학산으로 들어가게 되므로 그 당시 백하의 처지와 맞물려 백학산이라는 공간이 가지는 특별한 의미를 찾고자 하였다. 그의 호가 白下인 만큼 그의 삶에서 이곳은 관직 사직 후 짧은 기간이지만 은둔의 장소이자 삶에서 중요한 기점이 된 공간임을 밝혔다.

  이 글은 백하의 삶에서 의미를 지니는 3곳의 산수 공간을 심층적으로 확인하여 산수 공간 인식 양상을 파악함으로써 산수 문예 의식이 어떻게 발현되는지 살폈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나아가 백하 시세계의 한 부분을 이해하는 동시에 문학적 능력을 파악하는 데 일조할 것으로 생각된다.

 

주제어 : 백하 윤순, 산수시, 공간, 금강산, 속리산, 백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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