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집 | 풍우란의 『논어(論語)』 분석 (강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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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인문학연구소 작성일20-05-08 16:52 조회3,117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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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논어』독해를 통한 공자 사상 해석 중 1931년에서 1970년대까지 서술된 풍우란 해석에 대해 서술하고 평가하고자 한다. 이 해석에 드러난 시대적 특색과 풍우란 사상의 독자성에 대해 서술할 것이다. 1930년대 중국은 내우외환의 국제 정세 속 민족주의적 색채를 가지다가, 이후엔 맑스주의가 점점 학술계마저 지배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1900년대 초반 중국 철학사가 중 풍우란과 호적은 모두 고금의 학문을 통달하고 동서양 문화를 융합시킨 대가였는데 오사 운동 이후, 중국공산당 정부가 세워진 상황에서 시대적 요구를 수용한 철학사 서술을 완성하였다. 그런데 풍우란과 호적, 그들이 전통문화사상을 해석하는 태도는 완전히 상반되며, 특히 공자사상에 대한 평가 또한 다르다. 호적은 공자를 정치가의 각도에서 평가하면서 중국전통문화의 주류는 노자를 대표로 하는 도가문화라고 주장하는 반면, 풍우란은 『중국철학사』공자 편에서 공자를 교육가로 정의하며, “인”, “충서”, “예”, “정명” 등 개념에 대해서 해석을 하는데, 공자가 개척한 유가사상이 바로 중국전통문화의 주류라고 평가한다. 이러한 그의 논점은 호적의 관점과 상반된다. 풍우란은 맑스주의적 시각을 일부 받아들이면서도 『논어』의 원문적 근거에 입각하여 공자 사상의 보편적 의의를 드러내고자 하였는데, 공자사상에 대한 그의 견해는 당시 시대적 맥락과 함께 해야 비로소 제대로 이해될 수 있다. 풍우란은 공자의 “정명”사상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견해로써 평가한다. 그는 공자가 “정명”사상으로써 당시 사회모순을 완화하려는 생각은 그리 현실적이지 않으며 너무 단편적이어서 봉건통치질서를 수호하는 보수적 성격을 갖는다고 주장한다. 공자의 “예” 사상이란 보편적 의의보다 제한성을 지니고 있으며, 특정 역사시기의 필연적인 결과일 뿐이라고 한다. 풍우란에 의하면, 공자가 주창한 “예” 사상은 신흥통치계층에 적용되었던 윤리관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자의 “예”사상은 이전 통치 사상보다 진일보한 성격을 갖는다고 풍우란은 평가한다. 그리고 풍우란은 유가의 기본적 인간관을 드러내기 위해 “중용” 에 대해 자세히 논하면서, 계급투쟁의 관점에 입각하여 논어에 드러난 인애(仁愛), 충서(忠恕) 개념을 분석한다. 오사혁명 이후, 신문화 운동이 시작된 시기에서 공자를 비판하는 시대풍조 속에서 풍우란의 공자학에 대한 학술입장 또한 부단히 변화하였다. 그는 맑스주의라는 새로운 역사 환경 속에서도 유가사상이 중국사회의 주류문화로서 자리매김 할 수 있는지, 유가사상이 중국 문화사상사에서 주도적인 지위를 회복할 수 있는지, 이에 대해 숙고하였고, 유가사상을 당대 사회의 요구에 맞게 적용시키고자 이론적 작업을 진행하였다.
주제어 : 논어(論語), 유가(儒家), 예(禮), 중국, 풍우란(馮友蘭)